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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 13일,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지방 쌩틸레르 뒤 아르꾸에(Saint-Hilaire-du-Harcouet) 근처 빠리니(Parigny)에서 아버지 레옹 델랑드( Leon Deslandes)와 어머니 빅토린느 르꾸르티에(Victorine Lecourtiller)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루이 델랑드는 1914년 10월 01일, 쿠탕스 교구 대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해외선교에 뜻을 두고 1921년 9월 13일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함과 동시에 외방 전교회 신학교로 편입 이듬해 12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1923년 6월 5일, 한국에 도착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칠곡 가실성당, 부산진성당(현.범일성당)을 거쳐 대구교구청 부당가 겸 성요셉성당(현.남산 성당) 신부를 역임하였다.

1934년 5월, 경북 영천군 화산면 용평성당 신부로 부임하여,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료진료소를 개설하여 의료사업을 시작하였다.

1935년 12월 8일, 루이 델랑드 신부는 예수성심께 자신을 봉헌할 것을 결심한 6명의 용편본당 동정녀들의 서원을 받아 들여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다. 용평에서 영천으로, 영천에서 포항 영일만의 송정바닷가 (현.포항제철)로 옮겨오면서 수도공동체는 점점 성장해 나갔으며, 가난과 전쟁으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모자애원을 기초로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하여 보육원, 재활원, 양로원, 무료진료소, 무료급식소, 나환자정착촌 등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였다.

1965년 3월 25일, 수녀들의 첫 총회를 계기로 은퇴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영일군 오천면 갈평리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제2의 성모자애원 사업을 쉬지 않고 펴나갔다.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한 공로로 1962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국민훈장 동백장)을, 1969년 11월 3일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훈장을 받았으며, 1972년 11월 17일 갈평 사제관에서 그의 소명이었던 ‘사랑의 선교사’ 역할을 마감하였다.